의주 만상 '임상옥' 조선 제일의 거부로 거듭난 동기와 "유명한 일화"
사실상 임상옥이 조선 제일의 거부로 거듭나게 된 동기이자 상인이 천대받던 조선 시대 상인이 남긴 가장 유명한 일화이다. 임상옥은 아버지로부터 받은 교훈은 ■ 장사란 이익을 남기기보다 사람을 남기기 위한 것이며, 사람이야 말로 장사로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이윤이고, 따라서 신용이야말로 장사로 얻을 수 있는 최대의 자산이다.■
임상옥은 조선 후기 의주에서 활동한 만상이다. 그는 1720년경에 태어나 1800년경에 사망했다. 그의 아버지는 의주에서 작은 상점을 운영하고 있었다. 임상옥은 어려서부터 아버지의 가업을 이어받아 상업에 종사했다. 그는 의주에서 가장 부유한 상인 중 한 명이었으며, 중국과의 무역으로 큰 부를 축적했다. 그는 또한 의주 지역의 사회와 경제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 임상옥은 중국과의 무역으로 큰 부를 축적했지만, 그는 의주 지역의 사회와 경제 발전에도 큰 기여를 했다.
임상옥은 청나라에서 만난 팔려가는 여인의 몸값 500냥을 지불한 사건이 있다. 인삼을 모두 팔고 돌아가기 전에 팔려가는 여인을 보고 그녀의 목숨값으로 500냥을 몽땅 주고 그 장미령이라는 여인을 구해준다. 그래서 의주 만상에서 쫓겨난 것이다. 나중에 장미령이 고관대작의 첩이 되어 임상옥이 청나라에서 장사하는데 큰 인맥을 만들어 주어서 30대에 일어설 수 있었다고 한다.
임상옥은 작은부자는 한 사람의 노력으로 이루어질 수 있지만 큰 부자는 나라의 도움이 있어야 이룰 수 있는 법이다. 그래서 그는 나라의 인맥을 고민하던 중 순조의 어머니의 형제인 박종경 집에 초상이 났는데 부의금을 5천 냥을 보냈다. 5천 냥의 부의금에 놀란 박종경이 이 정도 부의금을 내는 상인이라면 밀어주어도 좋겠다고 생각해서 청나라와 인삼 무역을 하는 인삼 전매 독점권을 주었다고 한다. 그때 임상옥은 30대였다.
임상옥이 평소 스승으로 모시던 석송스님이라는 분이 어려울 때 펴보라고 준 두 글자를 있었다. 그런데 임상옥이 아주 어려울 때 종이를 펴보니 한 글자는 사(死)이었다. 임상옥은 이것을 들고 당시 같이 사신으로 온 추사 김정희 선생을 찾아갔다. 내가 지금 아주 어려움에 서 있어서 어떻게 하지요?라고 물으니 추사 김정희선생은 어차피 앞으로도 뒤로도 못 가면 죽을 각오로 앞으로 나아가라.
조선의 홍삼은 사신들이 중국에 머무는 동안 팔아야 하는데 조선의 홍삼이 값이 높아질 때 중국 상인들이 담합하여 사신들이 떠날 때까지 홍삼을 사지 않고 있다가 조급해질 때 헐값으로 팔고 가는 것을 고민하다가 추사 김정희 선생의 말을 듣고 한국 상인들이 가져간 모든 홍삼을 임상옥이 사들여 홍삼에 불을 질렀다. 중국 상인들이 난리가 났다. 중국 상인들이 홍삼을 사지 못하면 장사를 못하니 다시 홍삼값을 제대로 부르기 시작했다. 그래서 임상옥은 자신이 태운 홍삼값까지 붙여서 모두 팔았다고 한다.
상도(商道)... 임상옥은 신뢰를 더 얻게 되어 거상(巨商)이 되었다. 매천야록에 임상옥은 "의주에 사는 임상옥은 돈 버는 재주가 비상했는데 그중 한중 양국의 무역을 독점해 왕실처럼 부를 누리므로 북경사람들은 지금도 그의 이름을 부르곤 한다." 임상옥은 어느 날 갑자기 의주부윤과 평양감사 일행 700명이 방문했는데 그들을 모두 따로따로 개인 상을 차려 대접했다고 한다. 그만큼 부자인 것이다.
임상옥에게 평생 가르침을 준 또 하나의 경계는 "계영배(戒盈杯)"이다. 계영배는 "가득 차는 것을 경계하라"라는 뜻이다. 그만큼 임상옥은 자신의 관리를 철저히 했다.
이생이사(二生二死)... 전주에 이방이 급한 용무가 있어 돈을 꾸러 왔다. 임상옥은 어음을 주면서 서울에 육의전에 가면 환전을 해 줄 것이다라고 하고 큰돈을 내어준다. 이방이 따난 후 그가 두고 간 어음을 찢어버렸다. 왜 어음을 찢어버리냐고 물었더니 이 돈은 받지 못하는 돈이다.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이방은 이 돈을 안 주면 죽일 생각으로 온 것을 보고 그의 눈에 살기가 있어서 목숨을 살려야 해서 큰돈을 준 것이다.
홍경례의 난을 준비하면서 임상옥을 찾아왔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하다 석정 스님이 준 다른 한 장을 꺼내보니 정(鼎) 솥정자가 쓰여있었다. 솥은 다리가 3개인데 권력과 명예 그리고 재물이 3개인 것이다. 사람은 다 가지면 좋겠지만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이다. 후에 홍경례는 난을 실패한 것이다.
이런 임상옥은 '계영배(戒盈杯)'라는 술잔을 옆에 두고 있었다는 것이다. 항상 넘치는 것을 경계한 것이다. 임상옥은 의주지역에 이재민을 살리고 많은 후원을 하여 임상옥은 나라에서 종 3품의 평안도 귀성부사의 벼슬을 내렸으나 반대하는 사람들로 관직을 내려놓았다. 말년에는 자신에게 빚을 진 사람들을 불러서 모든 빚을 탕감해 주었다고 한다.
어차피 빚이란 것도 물에 불과한 것 목마른 사람에게 물은 주었다고 어찌 받을 빚이요. 갚을 빚이라 하겠는가. 그들이 없었다면 상인으로 성공을 거둘 수 없을 것이다. 애초부터 내 것이 아닌 것을 그들에게 돌려주는 것뿐이다. 재물은 물처럼 평등해야 하고 사람은 저울처럼 곧아야 한다라고 했다.
소설 상도에서는 이러한 엄청난 배포를 가지고 인삼을 태울 수 있었던 것은 승려로 지냈던 임상옥이 환속하면서 주지 스님에게 받았던 세 가지 묘책 중 첫 번째 것을 풀어서 死자가 적혀 있는 것을 보고 사즉생 생즉사의 원리를 생각하며 일을 진행한 것으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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