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도통 인희선생 4

'도통道通 인희선생' 하늘이 비치는 샘, 용문산 운흥암雲興庵

'도통道通 인희선생' 하늘이 비치는 샘, 용문산 운흥암雲興庵 하늘이 비치는 샘, 인희선생은 낮으로는 글을 쓰고 밤으로는 그냥 자고, 저녁으로 이동현 학자가 와서 얘기하다 가기도 하고 그러구 지고있는데. 하루는 이동현 학자가 와서 하는 얘기가, 식수를 집에서 상당히 멀리 떨어진 개울에서 길어다 먹는데 겨울이 되어 소 여물도 삶아주고 하려면, 여자들이 동이로 물을 이어다 날라야 하고 남자들이 물지게로 져다 나르고 해야 하는데 보통 힘든 일이 아니어서 부탁한다고, 우리집 어디에 우물을 파야 하겠는데 물이 날만한 곳이 있는지 좀 봐 주십사고 부탁을 했다. 눈이 와서 마당에 눈이 하얗게 덮여 있을 때인데 부탁을 하니 우물 팔만한 곳을 찾아볼 생각으로 인희선생은 새벽에 투시안으로 그 집 마당을 살펴보니까 바로 그 ..

인희 선생이 도통(道通) 수련하는 과정의 여정을 그대로 쓴 글

인희 선생이 도통(道通) 수련하는 과정의 여정을 그대로 쓴 글 이 글은, 인희 선생이 도통(道通) 수련하는 과정의 여정을 그대로 쓴 글이다. 누구든지 남의 도통의 여정을 비난하거나 옳고 그르다는 판단은 할수없으며 해서도 안되는 일이다. 인희선생은 탄허스님 뿐 아니라 여러 스님들과 도인들이 인정한 도통의 어른이시다. 묵호墨湖 발한發翰 인희선생은, 보경사에서 수도를 마치고, 묵호로 이사를 가서 정착하게 되었는데, 이 후로도 거쳐야 할 수도 장소가 여러 군데 있으나, 묵호가 중심이 될 것이라는, 신명계의 계시에 따라, 임진년(壬辰年) 8월에, 묵호 초록봉草綠峰이 바라다 보이는, 발한에 집을 마련했다. 인희선생은, 수도 갈 적에는 그 전처럼 가족과 함께 이사를 가지 않고, 인희선생 혼자만 옮겨다니고,가족들은 경..

도통 '인희 선생' 성황당을 없애는 미신타파운동 "부적"으로 살린 목숨

도통 '인희 선생' 성황당을 없애는 미신타파운동 "부적"으로 살린 목숨 신神자와 영靈자 글자의 의미는 : 인희선생은 학교 교사를 할 때는,, 미신타파운동을 한다고 동네 입구의 성황당을 없애는 운동도 하던 분이다 스승을 만나 도통道通공부를 하면서, 일어나는 일들은 기적 같은 일이다. 인희 선생이 수련을 하는 동안에 소문이 나서 전국적으로 전염병이 돌아서 병원도 소용이 없었던 시절 동네 사람들이 인희 선생을 찾아와서 부적으로 전염병을 잡아준 사건과 각화사 스님의 신도가 자식이 아파서 어려움을 겪어서 신도 집에 가서 문제를 해결해 준 내용이다. 부적符籍과 전염병 : 인희선생이 감추암에서 돌아와 추수를 끝내고 혼자 춘양 각화산 밑에 있는 마을에 방 한 칸을 얻어 49일 한 도수 기도를 했는데, ‘72둔 둔술문서..

'인희' 선생 스승을 뛰어넘는 하늘의 응답 "문무둔술신文武遁術神"

'인희' 선생 스승을 뛰어넘는 하늘의 응답 "문무둔술신文武遁術神" 스승을 뛰어넘는 하늘의 응답을 받다. 문무둔술신文武遁術神 인희 선생은 구방산에서는 육갑단六甲壇을 설設하고 기도를 했다. 하루는 둔술국遁術局에서 총령법사總領法師가 와서 1년 전 왕두산에서 문과등단文科登壇한데 이어 오늘 무과등단武科登壇을 해야 합니다라고 했다. 등단조서登壇調書를 작성해서 오시午時 정각에 발송하는 형식行式을 하기 위해 도장을 찍고 있는데 인희 선생의 스승이 보시더니. “나도 문무겸전文武兼全이라 했지만 2년 전에 문과등단하고 내 여태 무과등단을 안 했는데 김 선생이 나보다 먼저 무과등단을 하게 되니 이게 어찌 된 일이오?”하고 인희 선생께 스승이 물었다. “지금 잘 모르겠으나 시간이 급하니 일단 등단형식을 마치고 와서 말씀드리겠습..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