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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봉스님 3

'향봉스님' 사자암, 조용헌의 사찰기행 "미륵산엔 사자사"가 있다

'향봉스님' 사자암, 조용헌의 사찰기행 "미륵산엔 사자사"가 있다 조용헌의 사찰기행 미륵산엔 사자사가 있다. ‘삼국유사’에는 지명 법사知命法師라는 백제의 고승이 등장한다. 그는 충남 예산의 수덕사를 창건한 인물이기도 하다. 별다른 자료가 남아 있지 않아서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주변의 정황을 고려해 볼 때 지명 법사는 백제 무왕의 스승이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미륵산 문화권을 연구해 온 역사민속학자 송화섭宋華燮박사의 주장에 따르면, 무왕의 생가 터는 사자사에서 훤히 내려다보이는 지점이어서 그는 아마도 어렸을 때부터 항상 미륵산의 사자사를 쳐다보면서 성장하였을 것이고, 왕이 되기 이전부터 지명 법사를 자주 찾아갔을 공산이 컸으리라고 한다. 사자사 밑에 있는 미륵사 창건의 계기도 무왕 부부가 바로 지..

'향봉스님' 산골 노승의 화려한 점심, 산골 노승의 푸른 목소리 "스님"

'향봉스님' 산골 노승의 화려한 점심, 산골 노승의 푸른 목소리 "스님" 향봉스님은 "산골 노승의 화려한 점심"과 "산골 노승의 푸른 목소리" 작가 향봉스님. 향봉스님은 출가하여 학벌이 없다는 이유로 스승을 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어느 날 옆에서 보고 있던 스님이 너는 학벌이 없으니 스승을 이름도 없고 힘도 없고 승적도 없는 스승을 정해주어서 승적 없는 스님으로 살았다. 산골스님도 학벌주의를 선호한 성철스님. 방장으로 계시는 성철스님은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서울대 나오면 모두 성철스님 상좌가 된다. 자운스님 영암스님 등 좋은 분들도 많았는데... 하지만 지금 서울대 출신 승복을 입은 성철스님 상좌를 찾기 힘들다. 학벌주의가 절집에서도 통했는가? 향봉스님에게 너는 학력 면에서 뒤져... 라는 말을 듣고 ..

'향봉스님' 스님이 기복을 부추기고 "해결사"인 양 해서는 안돼

'향봉스님' 스님이 기복을 부추기고 "해결사"인 양 해서는 안돼 '사랑하며 용서하며' 작가로서의 향봉스님 사진은 젊었고 형제인 정다운 스님과는 형제라도 얼굴이 닮지 않았다. 실제 정다운 스님은 실물을 법회에서 몇 번 뵌 적이 있는데 향봉스님은 책에 나온 사진만 본 것이다. 강남 봉은사에 다닐 때 지금은 봉은사가 변하여 예전과 다르지만 에전에 봉은사는 매일 기도를 가면 봉은사 들어가기 전에 사천왕문(四天王門) 전에 큰 나무가 있었다. 그 아래에서 조용히 앉아서 좀 쉬면 다양한 보살님들의 이야기가 소식을 전해준다. 그때 향봉스님 책이 나와서 향봉스님을 알게 되었다. 예전의 강남 봉은사는 새벽 기도 가면 눈이 온 날은 탑 앞에 토끼도 경기고등학교 쪽 산에서 내려와 새벽기도를 기분 좋게 해 주기도 했다. 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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