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빛나는 유산 '무구정광대다라니경' 국보 126호 세계 최고 목판 인쇄물
비단 보자기에서 나온 다라니경 5336 글자 수... 다라니경이란? 법륜스님의 말씀 "다라니라는 것은 한문으로 총지(叢誌) 모든 것을 다 지니고 있다는 뜻이다 다라니경이라는 말은 원래 존재하지 않는다. 부처님의 법문을 경(經)이라 말하고 그 경(經)의 요점 핵심요지 이런 것을 농축시켜서 뽑아놓은 것을 다라니라 한다. 다라니는 글로서는 짧고 조그마하지만 사실 그것이 팔만대장경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유홍준 명지대 문화예술대학원장은 "런던에 있는 영국도서관에 가면 출판과 인쇄에 관한 전시장이 있다. 거기에서 제일 먼저 나오는 작품이 우리의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다. 인쇄가 발달했다고 하는 것은 기술이 발달했다는 것을 넘어서 정신문화가 발전했음을 말해준다. 우리의 높은 문화 수준을 이 유물이 말해주고 있다."
1966년 석가탑의 사리함을 노린 도굴로 석가탑이 손상을 입고 붕괴 위기에까지 몰리자 긴급하게 유지, 보수를 위해 해체작업을 하던 중 석가탑 2층에서 사리구와 함께 발견되었다. 이 과정도 순탄치가 않았다. 2층 옥개석을 들어 올리던 중 옥개석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나무지주가 부러지면서 옥개석이 땅바닥에 추락하는 사고가 났다. 이러면서 2층 탑신 내부가 노출되어 그 안의 사리감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세상 밖으로 나온 것이다.
'무구정광대다라니경(無垢淨光大陀羅尼經)'은 "티끌 없이 청정하고 빛나는 대 다라니"이라는 뜻이다. 도화라국(都貨邏國)의 승려 미타산(彌陀山)이 법장(法藏)과 함께 당나라 무주(武周) 말년인 장안 연간(長安年間, 701∼704)에 한역하여 대장경에 편입한 것이다. 멸죄연수(滅罪延壽: 죄를 씻고 수명을 연장함)의 법을 구하기 위해 옛 탑을 수리하거나 조그마한 탑을 무수히 만들어 그 속에 공양토록 한 경전이다.
석가탑 다라니경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중국 측천무후 시대의 시대 글자가 발견된 것으로 변조문자(무주제자)가 등장한다. 측천무후는 당나라 고종의 황후로 690년부터 705년까지 스스로 제후에 오른 여걸이다. 그녀는 100자 정도의 무주제자를 만들도록 해 썼다. 이 글자들은 금석학에서 시대를 고증하는 중요 자료로 활용된다. 이를 근거로 중국 학자들은 석가탑 다라니경이 당나라에서 인쇄된 것이라고 말한다. 이 또한 편협된 시각이다. 우선, 종이가 신라 전통한지인 닥종이며 서체도 통일신라에서 널리 쓰였던 육조체다.
신라 하대의 사회는 매우 혼란한 시기였다. 귀족들 사이에서 왕위쟁탈전이 치열하게 벌어져 35대 혜공왕(재위 765~780년)부터 마지막 56대 경순왕(재위 927~935년)까지 170년간 무려 21명의 왕이 교체됐다. 이러한 정치적 대소용돌이 속에서 무구정탑이 널리 유행한다. 법광사 석탑, 창림사 무구정광탑, 보림사 석탑, 황룡사 9층 목탑(경문왕 12년 중수), 백성산사 탑, 성주사 무구정광탑, 선림원 삼층석탑, 동화사 금당서탑 등을 들 수 있다. 새롭게 집권한 세력은 무구정광탑을 통해 실추된 왕실의 권위를 찾으려고 했다. 무구정광탑을 세워 권력투쟁에서 희생된 선조의 명복과 국가의 안위를 빌고 이를 통해 왕위계승의 정당화와 정치적 안정을 꾀하려 했던 것이다.
이제까지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인쇄물이 770년경에 간행된 일본의 『백만탑다라니(百萬塔陀羅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이 경이 발견되었고, 이 경이 신라시대의 것임을 증명해 주는 중수기까지 발견됨으로써 수정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일본의 『백만탑다라니』를 살펴보면, 전문을 완전하게 다 새긴 목판인쇄물이 아니고, 『무구정광대다라니경』 중에서 근본(根本)·자심인(自心印)·상륜(相輪)·육도(六度)의 다라니 4종 만을 발췌하여 장단(長短) 2종으로 나누어 조그마한 나뭇조각에 새겨 도장 또는 스탬프를 찍듯이 날인한 낱장의 인쇄물임이 밝혀졌다.
우리의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경문 전부를 완전하게 새겨 글자면을 위쪽으로 하여 먹칠한 다음, 종이를 놓고 말총과 같은 인체로 문질러 찍어내어 두루마리형식으로 장정한 책이다. 또 판각술에서도 훨씬 정교하며 글자체가 고졸(古拙: 예스러우면서도 투박)하고 힘이 약동한다. 이러한 점으로 보아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현재까지 알려진 것으로는 목판인쇄술의 성격과 특징을 완전하게 갖춘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현존 목판 축장본이 되는 것이다.
한국 사학계에서는 무구정경의 제작 시기를 대략 704-751년 사이로 추정한다. 근거는 산스크리스트어로 된 무구정경을 처음 중국에서 한자로 번역한 때가 704년이고 석가탑은 751년부터 만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또한 무구정경에는 지(地)가 埊으로, 초(初)가 𡔈로 기록되었는데, 이는 당나라 측천무후 시기인 690년 ~ 704년 에만 사용된 무주제자(武周制字)이다. 그렇기 때문에 못해도 불국사를 건립한 751년 이전에 만들어졌을 확률이 높다는 것이 한국 학계의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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