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무엇인가? "병 주고 약 팔아먹는" 장사치가 되지 마라
이 법안에서 이 법을 수행하고 있는 법성인 들이여,, 심안을 열고 법안을 득하여 나투어 헤아려 보라. 후천성 법성의 법비가 꽃비 되어 내리는 소리를 무량광장 장엄하고, 육중한 법설이 분분한데, 너는 왜 마음으로 들으며 나는 듣지 못하는가? 이는 전생의 공덕이 크고 작음에 달린 것이다. 그러나 개의치 말라. 법륜의 바퀴는 허공으로 지나가느니라.
법기의 작고 큰 것을 논하지 말라. 근기가 굳고 나약함에 있나니, 생사를 넘어 나아가면 누구인들 못하겠는가? 다만 마음눈 앞에 티끌이 일어 마음의 평상심을 잃은 것에 불과한 것이다.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버린다면 어느 누가 그대들을 장부라 일컫지 않겠는가?
실상은 무상이요 형상은 가상이라. 무명과 지혜의 차이점이지, 실상과 가상이 어디에 있는가? 번뇌 망상이 깨닫고 나면 지혜인 것을. 망상이 지혜인가, 지혜가 망상인가? 망상도 본래는 없고 지혜도 본래는 없는 것이라, 이것은 망상도 아니요 지혜도 아니다. 본래 마음을 떠난 이것을 이름 지어 마음이라 하니, 마음이 없는 자가 어디에 있겠는가? 다만 망상으로 마음을 삼고 지혜로서 마음을 삼은 것이니라.
이것이 본래 어디로부터 온 것인가? 이는 온 것도 아니요, 생긴 것도 아니다. 다만 이름 없는 이름을 붙여 마음이라 하는 것이다. 일어나는 것도 마음이요 일으키는 것도 마음이라, 마음이 법성이며 법성이 마음이다. 누가 일으키고 누가 세우는가? 그 또한 마음이다.
마음이 무엇인가? 법성이 마음이 아닐진대 신성의 작용인가, 신성의 근원은 영성이니 영성의 작용인가? 영성의 근원은 창조성인 성령성이니 창조성이 마음인가?
법성인들이여, 성령성은 여여하여 이름이 없는 것, 형상계 만물이 존재하는 연유로 마음이라 이름 지어진 것이다. 이렇듯 실상은 무상이 아니라 실상 그대로 여여할 뿐이다. 그런데 인간이 육신에 형상을 덧칠하여 일으키는 가상이 있으므로 이 법이 생기는 것이다.
추우면 옷을 입고, 더우면 옷을 벗고, 배고프면 밥을 먹고, 피곤하면 눕는 것이다. 아침저녁으로 마음만 새롭다면 어디에 티끌이 쌓이겠는가? 다만 그렇지 못하니 수행 수업하는 것이 아닌가?
법성들이여, 아직도 잠을 자는가? 날이 밝아 해가 중천에 있으니 눈을 뜨고 꿈에서 깨어야지, 시종일관 눈 감고 잠만 자는가? 잠 속에 꿈을 꾸고 꿈속에서 사는가?
삶과 죽음은 본시 없는 것이다. 피조물인 육신이라는 옷을 벗고 입는 것을 생사라 하지 않는다. 망상이 죽고 사는 것, 이것도 생사는 아니다. 일대사를 이루고 못 이루고도 생사가 아니다. 다만 이 길을 가는 수행인의 마음이 일어나느냐 죽느냐 하는 것의 차이일 뿐, 본래 생사는 없는 것이다.
법성들이여, 망상 떨고 졸지 마라. 티끌에 이끌리어 벼랑에 떨어질까 두렵도다. 망상이 두려운가? 졸고 있는 것이 두려운가? 티끌이 두려운가? 벼랑 끝이 두려운가? 이 길 이 법은 본래 두려움이라는 것이 없느니라. 이 법도 본래 법이 아니며, 생사 없는 길 가운데 나타나는 것이 법이니라.
무상하다. 법이여! 법도 아닌 법이여! 여여한 그대로가 무상한 법이라면 이것은 신의 기틀이 아닌가? 무상신묘無想神妙 법상신묘法相神妙! 본래 공한 것도 아니요 실한 것도 아니라면, 중도는 어디에 있는가? 그것이 마음 가운데 있다면 이는 마음이 아니려니, 마음 없는 마음을 파헤치는 그놈은 무엇인가? 이것은 본시 마음이 아니다. 다만 이름 지어 마음이라 하는 것이다.
법성들 이여, 놓아 버려라. 실상은 실상이다. 오직 아름답게 무량한 광명을 드리우는 것, 형상계의 인간들이 다 같이 지혜가 열려 지혜지를 득한다면 형상 가운데 이루어지는 한 송이 꽃이 되련만, 우주 법계 다 같이 밝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어두움이 따르니 명암이 엇갈리어 망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것이 법계라면 한 송이 꽃이련만 형상계에 미진이 일어나니 후천성 법성으로 이것만 제거하면 형상계가 우주 가운데 핀 한 송이 무궁화가 되느니라.
무궁하고 무궁하다. 이름 지어 무궁화라. 우주 법계가 가득한 법성이 무궁하여 이름 지어 무궁화라 하느니라. 인간들 마음 가운데 무궁화가 피고 지니 이것이 법성이며, 신성이 아니런가?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의 삼독심도 무궁화 근기 앞에 홀홀히 사라지고, 수만 년 세월 속에 다시 피는 무궁화, 그 가운데 우리 인간들이 생로병사를 근심하여 길 찾아 헤매었고, 이제 후천결실 완성의 법성이 우주 법계에 가득하여 인간들의 본성을 되돌려 찾게 되니 이는 본래 창조주 하느님의 뜻하심이요, 마음 찾아 헤매던 수행인의 근본이니라.
그러하니 오늘날에 법운이 밝게 드리워지게 될 때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구태에 찌든 때를 법비로 씻어 버리고 너나없는 지상낙원의 시대로 지향해야 할 것이다.
아직도 이 땅의 인간들 마음이 밝지 못하고 망상이 가득하여 탐, 진, 치로 병들어 가고 있으나, 그것은 크게 우려할 일이 아니다. 새롭게 나타나는 후천시대의 후천성 법성 앞에는 그 어떠한 것이라도 허울을 벗고 실체를 나타나게 되어 있으니, 이 길을 행하는 법성인들은 밝은 시대를 맞이하게 된 것이 아닌가?
법성인들이여, 조금만 마음을 열고 들어보아라. 후천성 법성은 인간들이 모르고 있어도 본래 실체를 드러내게 되어 있으니 때를 기다리지 말고 부지런히 수행에 정진하라. 없는 마음 찾아 허송세월 하지 말라. 삿된 마음 벗어 버리면 그것이 본래의 마음이다. 이것이 본래 인간들의 평상심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렇다 하여 평상심이란 말을 들고 다니면 그 또한 삿된 짓이니, 그냥 묵묵히 수행 수업이나 해 나가라. 그리하게 되면 밝게 우러러 나오는 것이 있으니 그것이 평상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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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다지 어렵지도 않은 것을 가지고 어렵게 생각하여 마음 문을 닫게 하니 이것이 삿된 망상의 짓들이라, 망상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자들에게 ‘이러이러한 것이 망상이다’라고 가르쳐 주고, 그것을 없애 버리라 하여서는 안 된다.
인간들은 절로 마음이 밝아 망상이란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는데 ‘이것이 망상이다’ 하고 가르쳐 주는 것은 망상의 씨앗을 심어 주는 것이다.
무심하게 세월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이것이 삿된 것이니라’ 하며 고요한 마음에 삿된 바람을 불어넣고, ‘그것은 이렇게 하여야 닦이느니라’ 하며 설교 설법하는 자들이야말로 마구니가 아닌가? 병 주고 약 팔아먹는 장사치밖에 더 되겠는가?
알면 아는 대로 살아가고 모르면 모르는 대로 살아가도 우주 법계 법성이 스스로 나투어 씻어내게 되어 있다.
이것이 하늘의 섭리요, 자연의 법칙이니라. 이것이 하느님의 전지전능하심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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