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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봉스님' 사자암, 조용헌의 사찰기행 "미륵산엔 사자사"가 있다

밝은풀 2023. 8. 16.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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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봉스님' 사자암, 조용헌의 사찰기행 "미륵산엔 사자사"가 있다

조용헌의 사찰기행 미륵산엔 사자사가 있다.

삼국유사에는 지명 법사知命法師라는 백제의 고승이 등장한다. 그는 충남 예산의 수덕사를 창건한 인물이기도 하다. 별다른 자료가 남아 있지 않아서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주변의 정황을 고려해 볼 때 지명 법사는 백제 무왕의 스승이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미륵산 문화권을 연구해 온 역사민속학자 송화섭宋華燮박사의 주장에 따르면, 무왕의 생가 터는 사자사에서 훤히 내려다보이는 지점이어서 그는 아마도 어렸을 때부터 항상 미륵산의 사자사를 쳐다보면서 성장하였을 것이고, 왕이 되기 이전부터 지명 법사를 자주 찾아갔을 공산이 컸으리라고 한다.

 

사자사 밑에 있는 미륵사 창건의 계기도 무왕 부부가 바로 지명 법사를 만나러 가는 도중에 미륵 삼존이 출현한 데 있다. 기록으로나 주변 정황으로 따져 볼 때 지명 법사와 무왕의 관계는 각별했다고 판단된다. 다시 말해서 별 볼일 없이 마나 캐던 서동이 제왕의 위치까지 오를 수 있었던 배경에는 스승이었던 지명 법사의 지도가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을 안다는 뜻이 지명知命이라는 법호로 보아서 그는 전생. 현생. 내생의 삼생三生 정도는 볼 수 있는 도력의 소유자였던 같기도 하다. 도력이 있어야 사람을 지도할 수 있는 법이다. 이런 스승이 있었으니 무왕이라는 인물이 나올 수 있었지. 스승 없이 평지 돌출은 어렵다. 무왕 뒤에는 지명 법사가 있었다. 지명 법사는 아마도 왕사에 해당하는 인물이었을 것이다.

 

무왕이 선화공주와 함께 지명 법사가 머무는 사자사를 방문하러 가던 도중 연못에서 미륵 삼존의 출현을 맞게 되었다는 삼국유사의 대목을 놓고 그동안 학자들은 의견이 분분하였다핵심은 사자사라는 절이 과연 실존했던 절인가?’였다. 현재 미륵산의 정상 부근에 있는 사자암은 너무 규모가 작고 초라해서 왕의 스승격인 지명 법사가 살 만한 절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혹자는 사자사가 미륵산 아래의 어딘가에 있지 않나 추측하기도 하고, 또는 일연 스님이 피곤하니까 현지답사를 빼먹고 얼렁뚱땅 기록해 놓은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지난 1992년 사자암에서 사자사師子寺라고 새겨진 명문기와가 출토됨으로서 이러한 의문은 모두 사라졌다 는 같다. 미륵산의 현재 사자암이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사자사인 것으로 확인된 것이다. ‘삼국유사의 저자인 일연 스님의 치밀한 고증벽이 다시 한번 입증된 셈이다.

 

일연 스님 덕택에 이거라도 남았지, 만약 삼국유사마저 없었더라면 한국 사람은 무엇으로 서양 사람들에게 우리 선조들의 정신세계를 이야기 할 수 있겠는가. 일연 스님이 보통 고마운 게 아니다.

 

절이 번창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하나는 절터가 명당이어야 한다. 명당이어야 영험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유명한 기도 터들은 모두 명당에 자리 잡고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터 자체가 영험을 발휘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주지 스님의 도력이다.

 

그 절에 고승이 주석하고 있으면 신도가 몰리게 마련이다. 이때는 절을 보고 가는 것이 아니라 사람보러 가는 셈이다. 따라서 터도 좋을 뿐만 아니라 그 절에 고승이 머무르면 필요충분조건을 갖추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양대 조건 중에서 한 가지만 갖추어도 절은 유지된다. 특히 우리나라의 절터들은 모두 명당에 지리 잡고 있어서 그 많은 전란과 박해가 있었어도 오늘까지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이다. 터가 영험하지 않았더라면 벌써 소멸되어 버렸을 것이다.

 

사자사가 백제 때부터 지금까지 1,500년이 넘게 유지되어 왔다는 사실도 이곳이 영험한 도량임을 입증한다. 그렇다면 사자사는 무엇이 주특기인가? 절마다 전공이 다르게 마련이다. 어떤 곳은 관음 기도가 잘되고, 어떤 곳은 병이 잘 낫고, 어떤 곳은 나한 기도가 잘 받는다.

 

사자사는 선운사의 도솔암과 함께 귀신을 쫓는 게 주특기이다. 즉 죽은 영가가 달라붙어서 파생되는 병인 무병巫病을 치료한는 데 영험한 도량이다.

 

육체적인 데에서 기인한 병은 병원에서 치료하고, 심리적인 스트레스에서 기인한 병은 카운슬링을 받아야 하지만, 영적인 부분에서 기인한 병은 퇴마사退魔師의 치료가 필요하다.

 

이 퇴마사는 누구인가? 깊은 수행의 세계에 들어간 종교인, 즉 고승이나 신부, 목사 또는 도사들이다. 그러므로 영적인 원인의 병은 병원에서 고칠 수 없고, 이 사람들에게 가야 한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무병을 치료하려면 이러한 도인들을 만나야 한다. 명당인 곳에서 이러한 도인을 만나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선운사의 도솔암과 함께 미륵산의 사자사는 이러한 무병 치료에 특히 효험이 있다고 소문나 있다.

 

사자사에는 귀신 붙은 사람들이 많이 오는 만큼 여기서 머무르는 주지 역시 여기에 대처할 만큼의 수행과 도력이 필요하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영가들에게 오히려 당한다. 당한다는 것은 결국 몸과 마음이 병드는 상태를 일컫는다.

 

그러므로 수행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수행의 요체는 우선 계율에 있다. 계율은 핵우산과 같아서 계율을 철저히 지키면 어떤 귀신도 감히 범접하지 못한다. 사자사의 주지도 계율에 철저한 만큼, 사자사를 통어할 만한 힘을 갖고 있다. 그 힘을 가지게 될 때는 보통 영몽靈夢을 꾸는 것이 상례이다.

 

조용헌의 사찰기행 미륵산 사자사 편이다. 지금은 사자암에 '산골 노승의 화려한 점심' 작가, 향봉스님이 계신다. 천도재도, 대입합격기도도 없는 사자사에 향봉스님이 계셔서 요즈음 더 유명해진 사자암이다.

 

휴심정,조현이 만난사람에서, "향봉스님"에 대한 이야기이다. 전북 익산 금마면 미륵산 해발 380미터 깍아지른 절벽 제비집같은 사자암에 "향봉스님"이 있다.

 

그는 무리동물인 사자보다는홀로 살아가는 산중호걸 호랑이에 가깝다 이 고지에서 구름을 벗삼아공양주도 없이 홀로, 손수 밥하고 빨래하면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사자암 가는 계단을 오르기 전바른 불교 바른 신앙이란 바위글씨가 먼저 맞는다. 아니나 다를까부처님 오신 날을 앞두고, 전국 대부분 사찰에서 찬란히 빛나는 연등이이곳엔 하나도 걸려있지 않다. 이곳에선 부처님오신날에만 연등을 단다.

 

보통의 절들은 불자들이 스님을 뵈면 엎드려 3배를 하고식사 때도 스님 탁자와 재가자 탁자가 마치 반상 구분처럼 엄연히 나뉘는데절도 받지 않고 한 상에 둘러앉아 같은 밥상을 마주한다.

 

더구나 신자들이 스님의 생일이 언제인지도 모르니 회갑연이나 고희연을 받아본 적도 없고, 일반 사찰에서 사찰 경제의 밑바탕이 되어주는 천도재도 지내지 않는다. 대학입시 합격기도 한 번 한 적 없고신자들에게 시주를 권하는 권선문 한 번 낸 적도 없다. 사자암이야말로 세간의 자본주의가 넘어오지 못한 금단의 소도인 것만 같다.

 

불자들이 바치는 시줏물 가운데는 불심과 구도심이 담긴 무주상보시물도 없지 않지만, 시주금이 많으면 많을수록 절에 와서 스님에게서 대접 받으려는 불자도 적지 않다.

 

그 시주금에 목이 매여, 모든 대중들을 평등하게 맞이하기 어려운 것을이미 30대 때 체득한 향봉스님이다"있으면 행복하고, 없으면 자유롭다휴심정조현이 만난, 향봉스님에 대한 글이다.

 

 

 

https://youtu.be/nMO9apsuLu0?si=2hdYIE821kwZuM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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