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모든 이야기들(사회. 정보. 문화. 철학. 역사. 관광여행)

'연암산 천장사' 경허 선사의 체취 "그는 사찰 문에서 화살을 날리다."

밝은풀 2023. 5. 8. 22:27
반응형

'연암산 천장사' 경허 선사의 체취 "그는 사찰 문에서 화살을 날리다." 

연암산 천장사엔 경허 선사의 체취가 남아 있다. 경허는 근대 한국 선불교의 어머니이다. 천장사 법당 앞에 서면 저 멀리 시골 풍경과 먼 산들이 눈 아래 들어온다. 경허는 이곳에서 무엇을 했을까. 그는 활을 쏘고 있었다. 어떤 화살? 생각의 화살이다. 그래서 법당 앞을 지키는 문의 이름이 염궁문이다. 생각의 화살을 쏘는 문, 그 문에서 내가 던진 생각은 어디까지 날아갈 것이며 또 무엇을 맞히겠는가. - 조용헌의 사찰기행 -

 

경허스님은 여기서 총 18년을 살았다. 인근의 공주 동학사에서 화두를 타파한 후 ‘보임(保任)’하면서 머물렀던 곳이 이곳이고, 만년에 다시 돌아와 가사(歌詞)문학의 명작인 <참선곡(參禪曲)>을 집필한 곳이 이곳이다. 천장암은 작고 낡은 절이지만 참선수행의 종문(宗門)이라 이를 만하다.

 

참선곡은 “천만고의 영웅호걸/ 북망산의 무덤이요/ 부귀문장 쓸데없다/ 황천객을 면할쏘냐/ 오호라 나의 몸이/ 풀끝의 이슬이요/ 바람 속의 등불이다/ 삼계대사 부처님이 정령이 이르사대 마음깨쳐 / 성불하여 생사윤회 영단하고 불생불멸 저국토에/ 상락아정 무위도를 사람마다 다할줄로 팔만장교 유전이라 / 사람되어 못닦으면 다시공부 어려우니 ”라는 구절로 시작된다. 

천장사의 창건 연대는 언제인지 정학히 알 수 없다. 다만 신라 진평왕 때 창건되었다는 구전이 전해오는 것이다. 천년이 넘는 암자임에는 분명하다. 천장암은 경허 이전의 역사는 없고 경허 이후부터 비로소 역사가 시작된 셈이다. 경허의 유적으로 디귿자(ㄷ) 형태의 조그마한 법당이다. 법당에는 관세음보살이 모셔져 있고 그 오른쪽에는 장군의 풍모가 느껴지는 40대 중반쯤의 경허 초상화가 그리고 왼편에 액자 속에든 만공의 노년 모습을 담은 사진이 걸려있다.

 

어느 여름밤 경허가 법당에 큰 대 자로 누워 자고 있었다. 시봉을 하던 만공이 들어와서 보니 경허 배 위에 시커먼 물체가 하나 놓여있어서 가까이 다가가 보니 그것은 큰 독사였다. 깜짝 놀란 만공이 "스님 배 위에 뱀이있습니다." 하자 경허는 태연히 "가만히 내버려 두어라. 배 위에서 실컷 놀다 가도록 내버려 두어라."

 

경허의 무심과 배짱은 어디서 온 것일까. 무심은 화두라는 불구슬을 삼킨 자만의 경지이고, 배짱은 초상화에서 감지되는 터프한 호남의 기질에서 오지 않았을까. 경허의 초상화로 볼때 80근 짜리 청룡도만 하나 안기면 영락없는 장비 상이다. 선가(禪家)에서는 장군기(將軍氣)를 지녀야만 도(道)를 통한다는 말이 회자된다.    

 

법당 문앞에 걸려있는 '염궁문(念弓門)'이라는 경허의 글씨이고 염궁은 ‘念窮’이라고도 쓰고 ‘念弓’이라고도 쓴다. ‘생각을 다하다’로 읽어도 좋고 ‘생각의 활’이라고 읽어도 좋다. 다른 하나는 경허가 1년 반가량 보림했던 쪽방이다. 천장암에는 그 무시무시한 탈아(脫我)의 유적이 남아있다. 경허스님이 기거했던 방은 채 한 평이 되지 않으며 건물의 맨 끄트머리에 내몰려 있다. 

천장암은 지대가 높아서 아래를 굽어보는 위치라 전망이 전망이 좋은 곳이다. 그때 문득 경허 선사도 나처럼 천장암 법당에 앉아 산아래 펼쳐지는 저 풍경을 보고 있었을 거라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활을 쏘고 있었을 것이다. 어떤 화살? 생각의 화살이다. 떠오르는 생각들을 여기에 서서 저 툭 터진 풍경 속으로 쏘고 있었을 것이다. 여기는 생각의 화살을 멀리멀리 날려버리는 문이다. 경허는 여기서 몇 발의 화살을 쏘았을까? - 조용헌의 사찰기행 -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