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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암사' 불령산 '도선국사'가 터 잡은 "천하의 명당 수도암(修道庵)"

밝은풀 2023. 5. 15.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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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암사' 불령산에 '도선국사' 덩실덩실 춤을 춘 "천하의 명당 수도암(修道庵)"

천하의 도선 국사가 수도암 터를 잡고 7일 동안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는 구전(口傳)이 결코 과장이 아니라는 것이 납득이 갈 만큼 명당(明堂)이다. 수도암(修道庵)은 터만 좋은 것이 아니라 부처님도 잘 생겼다. 대적광전(大寂光殿)에 모셔진 돌부처는 거구이다. 왼손 집게손가락을 오른손바닥으로 감싼 형태인 지권인(智拳印)을 하고 있다. 지권인(智拳印)을 하고있으니 비로자나불이고 대적광전에 모셨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지권인(智拳印)을 한 불상은 주조된 것이 대부분인데  9세기 말 통일신라 후기에 선종(禪宗)이 들어오면서 유행하기 시작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지권인(智拳印)이라는 손 모양은 "내 안에 부처가 있다."는 선종의 이념을 강력하게 상징하는 수인이라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혜공 스님의 체험담에 따르면 수인이란 배의 돛대와 같은 기능을 한다. 고 한다. 수인의 형태에 따라 삼매에 들어가는 속도의 위치가 판이하게 달라진다는 것이다. 

 

이 중에서 지권인(智拳印)은 다른 어떤 수인보다도 내면세계로 깊게 그리고 세밀하게 들어갈 수 있는 장치로서, 초보자들은 함부로 취할수 없는 위험한 수인이라 한다. 초보 운전자가 시속 200킬로미터로 경주용 차를 모는 것과 같다.

 

선종(禪宗)이 이처럼 자력(自力) 수행 성격이 강한 지권인을 선호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아마도 이타적 보살행보는 자력적인 수행에 의한 해탈 쪽에 비중을 두어서일 것이다. 다시 말하면 부처를 밖에서 구하지 않고 철저하게 안에서 구해야 한다는 것과 안에서 구하기 위해서는 깊은 삼매의 체험이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선불교는 부르짖었고 지권인은 이 메시지를 집약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조용헌의 사찰기행 - 

 

김천 청암사 수도암(金泉 靑巖寺 修道庵) 석조비로좌나불좌상(石造毘盧遮那佛坐像) 고찰 청암사의 수도암에 있는 9세기 경, 통일신라 시대의 화강석재 석조 불상. 현재 청암사(경북 김천시 증산면 수도길 1438)에 소재 중이며, 1963년 "청암사수도암석조비로자나불좌상"(靑巖寺修道庵石造毘盧舍那佛坐像)이란 명칭으로 대한민국 보물 제307호로 지정되었다. 

 

김천 청암사의 수도암 대적광전에 봉안되어 있는 석조 불상으로, 774년에 조성된 석굴암 본존불과 887년에 조성된 경주 불국사 금동비로자나불좌상 과 비슷한 장대함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유명한 작품이다. 불상의 제작 연대는 9세기 경이며, 본 비로자나불좌상은 위엄찬 얼굴, 당당한 어깨, 거대한 체구 등으로 당대의 거작 불상을 대표하고 있다. 

신라인들이 최초 제작할 당시 원래는 불상 밑에 법화경으로 추정되는 오래된 책을 끼워 넣었는데, 아이를 못 낳는 여인들이 이 책을 뜯어다 달인 후 마시면 득남할 수 있다는 전설이 생겨났고, 이로 인해 긴 세월 동안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뜯어가면서 책이 속 깊이 밀려들어 지금은 보이지 않고 있다. 다만 아직도 불상 바닥에 어떠한 책 일부가 여전히 남아있다는 것은 확실하다고 한다.

 

불상 머리 형태는 소발이며 육계는 매우 작고 얼굴은 풍만한 사각형이다. 목에는 신라 특유의 삼도(三道)가 뚜렷히 조각되어 있고, 긴 눈과 작은 입, 그리고 평평한 콧잔등에서 위엄 있는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또한 손은 왼손 검지를 오른손으로 감싸고 있는데, 그 모습이 매우 사실적이며, 옷은 양어깨에 걸쳐 입고 있으며, 옷 주름은 시원시원하면서도 규칙적인 반복을 피해 자연스럽다.

 

그 모습은 867년에 신라인들이 조성한 봉화 축서사 선조비로자나불좌상과 매우 유사하다. 팔각대좌의 상대에는 앙련(仰蓮)을 새기고 중대는 안상(眼象), 하대는 복련(覆蓮)을 조각하였다. 상대의 앞면에는 3마리의 사자상과 용두를 새겨져 있는데, 다른 한국의 대좌에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한 형식이라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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