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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휘소' 박사는 한국이 낳은 천재 물리학자로, 세계 "물리학계" 선도

밝은풀 2023. 12. 14.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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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휘소' 박사는 한국이 낳은 천재 물리학자로, 세계 "물리학계"를 선도 기여

일제강점기였던 193511, 경성부 원정(현 서울특별시 용산구 원효로)에서 아버지 이봉춘, 어머니 박순희의 31녀 중 맏아들로 태어났다. 모친 박순희는 원정(모토마치)자혜병원(慈恵病院)에서 의사로 근무하고 있었다. 부친 이봉춘 또한 의사 면허를 가지고 있었지만 어려운 사람들에게 돈을 받고 치료하는 것을 싫어하여 개업의 활동을 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집안 생계는 모친이 도맡아 꾸려나갔다. 부친이 잠시 소학교 교사로 일하던 시기가 있었는데 모친과는 이때 사제지간으로 처음 연을 맺었다고 알려지고 있다.

 

일곱 살이던 이휘소는 1941년에 경성사범학교 부속제1국민학교에 입학하였다. 이 학교에 시험을 치러 입학하였고, 이휘소가 재학할 당시 이곳에는 조선인이 두 명쯤 재학하고 있었다. 이 무렵, 이휘소 일가는 모토마치에서 신설정로 이사했다.

 

이는 지금의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신설동 및 성북구 보문동에 해당하는데, 이휘소 일가가 이사한 곳은 신설정 중에서 특히 지금의 성북구 보문동에 해당하는 지역이었다. 모친은 이곳에서 소아과와 산부인과를 전문으로 하는 자애의원(慈愛医院)을 개업하였다.

 

그는 20세기 후반 입자물리학에서 자발적으로 대칭성이 깨진 게이지 이론의 재규격화 문제의 해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고, 맵시 쿼크의 질량을 예측하여 그 탐색에 공헌하였다.

 

 

이휘소 박사는 일제 강점기 시절 경성제국대학에서 수학과 물리학을 공부하였고, 1956년 서울대학교 물리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이후 미국으로 유학하여 매사추세츠 공과대학에서 박사 후 연구를 수행하였으며, 1961년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에서 조교수로 임용되었다.

 

이휘소 박사는 1964년 게이지 이론의 재규격화 문제에 대한 새로운 해법을 제시하여 물리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그의 연구는 게이지 이론을 정립하는 데 중요한 기여를 하였으며, 10명의 노벨상 수상자에게 영향을 주었다. 또한, 그는 1974년 맵시 쿼크의 질량을 예측하여 그 탐색에 공헌하였다. 그의 예측은 1977년 실험적으로 확인되었으며, 그의 연구는 입자물리학의 발전에 큰 역할을 하였다.

 

이휘소 박사는 1977616일 미국 일리노이주 케와니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하였다. 그의 나이는 43세였다. 그의 사망은 한국 과학계의 큰 손실로 여겨졌으며, 그의 업적은 한국의 과학 발전에 큰 귀감이 되고 있다.

 

이휘소 박사는 한국이 낳은 천재 물리학자로서, 그의 업적은 세계 물리학계를 선도하는 데 큰 기여를 하였다. 그는 한국 과학 발전의 상징으로 여겨지며, 그의 숭고한 정신은 후대 과학자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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