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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이 동방으로부터 떠오르고 있으니 "마음의 눈을 뜨고 행하라"

밝은풀 2023. 8. 20.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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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이 동방으로부터 떠오르고 있으니 "마음의 눈을 뜨고 행하라"

이 법안의 법성들이여, 이 법을 행하고 있는 법성인 들이여,, 심안을 얻고 법안으로 나투어 헤아려 보라! 우주 법계가 여여하니 법비가 가득하다. 이렇듯 법비가 가득한데 탐욕하고 성내고 어리석어 무명이 증장하니 가득한 법성 안에 살고 있으면서도 이러한 법광장의 진면목을 알지 못한다. 손에 쥐어 주어도 모르고, 나투어 보여 주어도 모르니 안타깝고 안타깝도다.

 

물질만능시대가 도래하여 어두움을 증장시켜 버렸으나 하늘은 무심치 않아 인간들을 측은히 여기시어 무명의 법성을 밀쳐내 버리고 후천결실 완성의 법성을 꽃비로 나투어 내리시니, 이것이 창조주 하느님의 전지전능하심이다.

 

그리고 후천성 법성과 아울러 우리 인간들을 다스릴 인간들의 하느님, 즉 인황님을 나타내시어 형상계와 법계와 신계, 그리고 영계 하늘나라를 다스릴 수 있도록 성령으로 나투어 일임하셨으니, 이는 하늘의 영광이요 이 땅의 화평이로다.

 

이제 세계가 한 집안이요 인류가 한 형제라, 이들 위에 사랑과 자비가 깃든 화목함을 내리셨으니 형상계가 이루어진 이후 최대의 경사가 아닐 수 없도다이 법을 수행하고 있는 법성인 들이여,, 들리는가! 보이는가! 후천성 법성이 진동하는 법음은 한 시대가 지나가는 말법의 종료된 법음과 새롭게 나타나는 새 시대의 법음이다.

 

이러한 시대가 왜 이제야 나타나는가? 길고 긴 무명의 장막 속에서 눈 뜬 장님이 되어 험준한 길을 더듬고 헤맨 지 얼마였던가? 그것은 인간들을 참 인간으로 태어나게 하고자 하는 산고였다.

 

이제 날이 밝아 태양이 동방으로부터 떠오르고 있으니 고정관념과 편견과 구태에 찌든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런데 모두가 철저히 세뇌된 믿음이라는 것이 물이 들 대로 들어 있으니 어찌할 것인가? 어느 경전에도 뒤돌아보지도 말라!’고 경고한 대목도 있지만, 믿음이 사상이 되어 버렸으므로 그 틀에서 쉽게 뛰쳐나오기 어렵게 되었도다.

 

그러나 한 귀퉁이가 무너지면 이합집산이 되어 쉽게 붕괴되는 것이 법성이므로 조금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이제 지난날을 되돌아보지 말라. 되돌아보면 영생의 때가 지나가 버리고 말 것이니 자기 마음을 자기가 딛고 스스로 일어서야 한다. 자기 마음을 자기가 딛고 일어나려고 하면 하늘의 법성이 도울 것이다.

 

그러나 의지해서 일어나려고 하면 돕지 않는다는 것을 알라. 지금은 바로 알고 바로 행하면 쉽지만, 의지해서 알고 의지해서 일어서려고 하면 시간만 헛되이 버리게 된다. 그러니 타에 의지하지 말라.

 

자신이 일어서려고 하면 자신이 일으켜 준다. 마음이 일어나면 법성도 일어난다. 자기 주인은 자기 자신이다. 자기가 자기를 일으켜 세우려 할 때 법성이 일으켜 세운다. 이것이 후천시대 후천성 법성이다.

 

이제 어리석음에서 눈을 떠라. 하늘과 땅 사이에 법성이 가득하다. 법성은 만물의 근원이 되는 정기다. 이러한 정기가 하늘과 땅 사이에 가득한데 누구에게 달라고 하며, 누구에게 이루어 달라고 하는가? 자기가 가져다 자기가 이루어야 한다.

 

하느님께서 우주 법계에 만물의 근원인 정기를 가득 채워 놓으셨다. 그런데도 하느님, 이루도록 해 주십시오!’ 하며 하느님께 의지하는 것은 어리석고 게으른 짓이다. 자기가 가져다가 가기 스스로 닦아 성취해야 되는 것을, 하느님만 부르면 되겠는가!

 

부모가 밥을 지어 상까지 차려 줬는데 부모님, 밥 좀 떠 넣어 주십시오!’ 해서는 되겠는가?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팔다리가 건강한 사람이 부모에게 밥을 먹여 달라 하면 먹여 주고, 대변도 대신 봐 달라 하면 봐주겠는가?

 

하느님께서는 이미 인간들에게 다 주셨으니 찾아 먹고 못 찾아 먹고는 자신에게 달려 있다. 하느님에게 애원하면 해 주실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면 이는 한없이 어리석은 것이다. 눈 밝은 자들은 찾아 먹고, 눈이 어두운 자들은 굶을 것이다.

 

인간들이여, 마음의 눈을 떠라! 법성의 눈을 떠라! 마음의 눈이 법성의 눈이다. 인간이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마음의 눈, 그 눈을 뜨는 사람이 있고, 뜨지 못하는 사람도 있음은 어떠한 이유인가? 그것은 길을 찾지 않아서 그런 것이다. 무명심인 탐욕하는 마음과 화내는 마음과 어리석은 마음으로 인해 그리 되는 것이다. 삼독심만 제거하면 마음이 스스로 열리고 심안이 밝아져 법안까지 나투게 된다.

 

수행인도 항시 발심하여 이 길을 가야지, 마음을 죽여 버리면 만사가 허사다. 이 길에 들어올 때나 수행할 때나 항시 마음을 펴 나가야 된다. 한 시도 마음을 잠재우지 말라. 항시 마음의 눈을 뜨고 일체 행에 임해야 한다. 촌음도 마음을 놓아서는 아니 된다. 마음을 놓아 버리는 순간 사마가 침투하는 것이다.

 

이 길에서 수행 수업을 하면 정신 고통과 물질 고통으로 인해 항시 헛된 것이 먼저 보이고 헛된 소리가 먼저 들리는데, 마음까지 놓아 버리면 어떻게 이 길에서 수행 수업을 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예부터 선지식들이 입버릇처럼 졸지 말라. 망상 떨지 말라. 속지 말라고 해 왔던 것이다.

 

마음의 눈을 뜨고 일체 행을 하라. 그것이 마음을 법답게 하는 것이다. 자기 마음을 법답게 할 때 심안도 열리고 법안도 얻게 된다. 동태눈이 되어서는 안 된다. 얼음에 얼어 버린 눈, 한쪽 사물만 보는 눈은 정상적인 눈이 아니다. 일체의 사고를 자기 방식대로 이끌어 나아가되 어느 한 곳에 고정되어서는 안 된다.

 

예부터 선지식들이 한결같이 눈앞에 티끌이 있어도 안 되고, 눈 안에 티끌이 들어가도 안 되며, 눈썹을 꿈쩍해서도 안 된다.’고 했다. 이 말의 뜻을 몰라 머리를 싸매고 알음알이의 망상만 떠는 자들도 있고, 어리둥절해하는 사람들도 있다.

 

눈은 마음의 눈을 말함이요, 티끌은 망상과 삿된 것을 말함이다. 그러나 마음을 한결같이 밝고 맑게 한 선()에 두라. 마음을 조금만 움직여도 천 길 낭떠러지로 떨어지고 마느니라오늘도 이 법안에서 수행하는 수행인들에게 법비가 가득 내리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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