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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봉스님' 산골 노승의 화려한 점심, 산골 노승의 푸른 목소리 "스님"

밝은풀 2023. 7. 28.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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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봉스님' 산골 노승의 화려한 점심, 산골 노승의 푸른 목소리 "스님"

향봉스님은 "산골 노승의 화려한 점심"과 "산골 노승의 푸른 목소리" 작가 향봉스님. 향봉스님은 출가하여 학벌이 없다는 이유로 스승을 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어느 날 옆에서 보고 있던 스님이 너는 학벌이 없으니 스승을 이름도 없고 힘도 없고 승적도 없는 스승을 정해주어서 승적 없는 스님으로 살았다.

 

산골스님도 학벌주의를 선호한 성철스님. 방장으로 계시는 성철스님은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서울대 나오면 모두 성철스님 상좌가 된다자운스님 영암스님 등 좋은 분들도 많았는데...

 

하지만 지금 서울대 출신 승복을 입은 성철스님 상좌를 찾기 힘들다. 학벌주의가 절집에서도 통했는가? 향봉스님에게 너는 학력 면에서 뒤져... 라는 말을 듣고 공양간에서 밥을 하면서 스님 생활을 하기도 했다.

 

26살에 불교신문사 편집국장 임명받을 때도 향봉스님보고 학벌이 없어서 편집국장을 못한다는 말을 듣고 사장 스님에게 스님도 대학 안 나왔잖아요? 라고 반문하니 그때 비로소 편집국장으로 임명해 준 것이다. 26살에 비로소 월주스님을 은사로 모셨다.

 

월주스님을 생전에 만나본 사람은 안다. 월주스님은 충분히 그럴 분이다. 월주스님 생전에 만나보고 인연이 있는 신도는 스님이 어떤 분인지 알것이다.

 

나는 단순한 사람이다. 누우면 5분 안에 잠이 들고, 화가 나도 10분 안에 풀린다. 젊은 시절 별명은 일방통행이거나 불칼이었다. 성질이 지랄처럼 급하고 말투와 행동이 거시기하게 거칠었던 탓이다. 그러긴 하나 쉽게 미안해하고 고마워하며, 마음이 여리어 영화를 보면서도 눈물을 찔금거리는 못난이 바보였다.

 

강한 자에겐 더욱 강하였고, 적당히 타협하는 어설픈 일 따위는 체질상 맞지 않아 전쟁 아니면 평화였다. 학력이 초등학교에 턱걸이하는 수준이라, 틈만 나면 책을 읽었고 돈만 생기면 서점에서 책을 샀다. 손에 잡히는 신문의 사설은 주제와는 상관없이 모조리 읽었고, 인도로 떠날 때쯤 모아둔 책이 3만 권을 넘었다. -교보문고 책소개 -

 

▶익산 미륵산 사자암 주지. 상좌도 공양주도 없이 홀로 밥 지어먹고,, 글 쓰고, 산책하는 향봉스님. 어린 시절에 백양사로 출가했고, 해인사 선방을 거쳐 불교신문편집국장과 부사장을 지냈다. 조계종 총무원 포교부장, 총무부장, 중앙종회 사무처장, 중앙종회의원 등을 역임하며 불교계 실세로 활동하기도 했다. 반면에 1973현대시학을 통해 등단한 시인으로서, 수필집 사랑하며 용서하며60만 부 이상 팔리며 베스트셀러 저자로 유명세를 떨쳤다.

 

지은 책으로는 작아지는 아이, 무엇이 이 외로움을 이기게 하는가, 일체유심조, 선문답20여 권을 펴냈다. 청평사, 보광사, 내장사 주지를 지냈다. 늦은 나이에 철이 들어, 인도, 네팔, 티베트, 중국으로 15년의 치열한 구도행을 떠났다. 이후 돌아와 20년째 사자암에 머무르며, 머리와 수염이 허연 미륵산의 한가로운 노승으로서 할 일 없이 평화와 자유 누리며 살고 있다 ■ - 교보문고 -

 

 

https://youtube.com/shorts/A43RQAFgXyk?si=RsUG_prTQz684_f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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