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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란 무엇인가... 정신 오염의 원인

밝은풀 2023. 9. 2.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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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란 무엇인가... 정신 오염의 원인

정신 오염의 원인. 

. 자기중심적인 편견과 선입견

 

우리가 살고 있는 물질적 환경은 많은 발전을 이룩하고 있는데 어찌하여 인간의 정신세계는 발전이 뒤지고 아직도 인생에 대한 해답을 찾지 못해 방황하고 있는 것인가?

 

그 원인은 자연계는 자연스럽게 진리에 따라 생명을 유지하고 있지만 인간은 왜곡되어 부자연스럽고 비리성적인 상태로 악순환을 반복하고 있어 창조본연의 자연스러움을 잃고 타락습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고장 난 인간을 아무리 분석하고 연구해도 명쾌한 해답이 나오기 어렵다. 타락한 인간은 모든 것이 자기중심적이기 때문에 보편적이고 공리적으로 보는 것 보다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주관으로 판단하기 쉽다. 그러므로 자연히 그 결과는 주관적이고 편견적인 오류로 기울 수밖에 없다.

 

인간에 대한 올바른 진리를 알고자 하면 타락하지 않은 眞人이나 타락습성을 완전히 벗고 신생하여 거듭난 聖人들을 연구하고 분석하지 않으면 그 해답을 찾기 어렵다. 그러므로 과거에 진리를 운운하였던 사람들은 성인군자로서 인간의 타락습성을 극복하였던지 또는 천성이 맑았던 사람들이다.

 

진리를 바로 알려면 먼저 자기중심적인 주관과 편견을 버리고 과거의 선입견으로부터 오는 기성관념을 완전히 버려야 한다. 자신이 일생동안 고생하고 열심히 쌓아놓은 지식과 신념을 버리기는 그리 쉽지 않다.

 

그러한 지식과 신념으로 살고 믿어 왔던 신념체계를 한꺼번에 버리기는 매우 힘들고 때로는 죽기보다 더 힘들 수도 있다. 그러나 사물을 바로 보고 바로 알려면 죽을 각오로 다 비워야 한다. 진리를 깨닫는 것도 힘들지만 이미 세뇌 된 지식의 오류나 신념체계를 버리는 것은 더욱 어렵다.

 

인류 역사를 통하여 대 성자들이 탄생했지만 그들을 알아보았던 이는 평범한 서민 또는 비 지식층으로서 선입견이 없는 순수한 사람들이었다. 반면에 예수를 모욕하고 음해하여 죽음으로 몰았던 이들은 교오한 종교 지도자들과 율법학자들이었다.

 

당시 기성관념을 버리지 못했던 지식인들은 예수에 대하여 오지誤知, 오판誤判 하였으나 기성관념이 없고 순수한 범인들은 예수를 정시正視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과거와 마찬가지로 오늘이라도 메시아가 출현한다면 대부분 기득권을 가진 지도자들이나 지식인들이 먼저 반대할 것이다. 그러므로 순수한 인간의 본심을 회복하지 않고는 타락한 세상을 바로 보고 바로 판단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 사욕 (이기심, 자기중심, 기복 )

 

인간은 본래 순수하여 본심본능의 자오성과 자오능력에 의하여 진리를 알고 지혜를 깨닫게 된다. 그러나 거짓과 자기중심적인 사욕에 빠지면 객관적 입장에서 바로 보고 바로 판단하는 명오를 잃게 된다. 그러므로 자기중심적인 편견에서 벗어나 사욕을 버려야 한다. 특히 신앙적인 욕심으로 구원, 천당, 기복 등등의 허욕을 버려야 한다.

 

종교인들이 왜? 그러한 비합리적인 신앙을 계속하고 있는가를 생각할 때 대부분의 종교인들은 그들만의 신념체계로서 신앙은 무조건 선이며 진리라고 하는 고정 관념을 가지고 있는 것이 이미 오래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믿기만 하면 사죄 받고 천국에 가서 복을 누린다고 맹신하기 때문이다. 이는 불로소득을 좋아하는 허욕에서 비롯되고 더구나 고행을 신심信心이라고 믿는 것은 잘못된 신념체계와 허위 때문이다

 

참 종교의 본지는 기독교의 신생천국, 불교의 성불정토, 유교의 수신 평천하를 통해 이루어지며 삶에 대한 화복보응은 선업의 공덕과 악업에 정비례 한다. 그러므로 진리를 바로 알려면 사욕을 버리고 순수한 본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러면 샘이 저절로 솟아나듯 자오성에 의하여 진리를 자각하게 된다.

 

. 공포심 (심판, 지옥, 저주, 재앙)

 

창조자의 모상으로 된 인간은 정상적인 상태에서는 인간의 1.동물본심, 2.양심본심, 3.이성본심, 4.정서본심, 5.심정본심, 6.종교본심 그리고 7.영성본심의 7가지 본심과 본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여 모든 것을 바로 보고 바로 판단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정상적인 신경과 심리가 작동하여 오지誤知나 오판誤判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타락하여 비정상적인 세상에는 선악이 혼돈되어서 원하는 선보다 원치 않는 악을 생각하고 행할 때가 많다. 또한 주관적인 편견으로 왜곡되게 보고 실수와 범죄를 할 때도 많다. 그리하여 마음의 평안을 잃고 특히 공포심을 가지면 마음의 균형을 잃게 되며 어쩔 줄 모르게 된다.

 

. 맹신

일반인들은 양심과 이성을 통하여 공리적 상식으로 진리를 알게 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종교인들은 과학적 실증이 없이 신불神佛의 이름 또는 계시나 교주의 권위를 빌려 자기 정당화하거나 주관적인 경전해석을 통해 집단 정당화 한 것을 진리라고 주장한다. 이는 매우 비합리적이고 편견적이어서 위험하다.

 

그 증거로 교파가 분열되어 기독교는 사백 교파 이상으로 분열되고 불교도 수백 교파로 분열되어 각자가 절대 진리라고 주장하여 서로 이단시비하여 논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지금도 사회적으로 많은 혼란을 가져오고 있으며 서로 소모전을 벌이고 있다.

 

객관적으로 볼 때 대부분의 종교인들은 형식과 기복적인 신앙으로 합리성, 과학성, 실증성이 부족하다. 뿐만 아니라 종교 교주에게 속아서 속박과 착취로 금전과 시간을 낭비하여 유익성이나 발전성에 대해서도 미래가 불확실하다.

 

또한 올바른 신앙생활을 통하여 선한 생활, 선한 사회를 건설하는 것보다 교회당이나 사찰을 짓고 교주를 우상화하여 피해를 당하는 것을 오히려 신앙으로 착각 한다. 그러한 방식으로 존재하지도 않는 극락이나 천당을 팔기 위해 형식과 기복으로 오도하는 것이 현실 상황이다.

 

이것은 종교의 본지가 되는 이상인간, 이상국가, 이상세계를 이루어 잃어버린 낙원을 회복하는 것과는 너무 멀리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지식인들이 종교적 신앙을 의심하면서도 맹신에 빠져 떠나지 못한다. 그 이유는 신불神佛과 내세는 영원히 탄로 나지 않는 미지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또한 행위가 없어도 믿음으로 구원 받는다.”는 비합리적인 위선이 통하는 세계로 불로소득을 좋아하는 허욕의 타락 습성 때문이다.

 

인간은 본래 하늘을 공경하여 선하게 살도록 하는 양심본심이 있기 때문에 완전한 무신론자가 되지 못한다. 또한 양심의 안전장치가 있어 잘못에 대한 부끄러움과 가책을 느끼며 완전한 악인이 되기 어렵다. 그리하여 종교의 모순을 경험하면서도 회의적이지만 神佛을 운운하면 인간의 마음은 자신도 모르게 끌려가는 것이다.

 

우리는 항상 맑은 마음으로 사욕이나 편견을 버리고 순수하게 만사를 바로보고 특히 참 종교 지도자인지, 아닌지, 평가할 때는 그의 사생활과 사회공헌의 유무와 인격과 덕행을 살펴보아야 한다. 때때로 자기 민족이나 종교집단 안에서 성인으로 추앙되지만 만인이 공인하는 것과는 다르게 평가될 때도 있다.

 

인류가 공인하는 성인은 만인의 행복을 위해 실증적으로 업적이 있는 공헌자를 말하며 교회나 사찰에서의 형식과 기복적인 사생활보다 사회 안에서 인류와 더불어 도덕윤리의 모범과 살신성인의 본보기가 되어 지상낙원의 실현을 위해 공헌한 자를 말한다.

 

. 신비와 미신

 

인간의 이성이 계몽되지 않으면 신비적인 것과 미신에 빠지기 쉽다. 게다가 영적인 현상까지 겹치게 되면 더욱 미신에 빠지기 쉽고 점차 판단력을 잃게 된다. 그러므로 신비나 미신에 대해서 냉정하게 관찰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오늘날 과학이 발달하고 문화문명이 융성하여 편리하고 풍부한 세상이 되었지만 지구상에 어느 지역에서는 불편하고 빈곤한 곳이 많다. 이는 대부분 그들의 의식수준이 낮거나 미신에 빠진 경우에서 많이 볼 수 있다.

 

그러므로 기적이나 미신을 멀리하고 항상 순수한 이성을 계몽시켜야 한다. 대개 미신이나 신비는 저급한 잡령들로부터 연유된다. 그러나 영계에 대해 무지한 사람들은 이러한 신비적 현상이 하늘로부터 직접 오는 것으로 착각하여 더욱 신비와 미신에 빠져들게 된다.

 

. 감정의 편협과 오류

 

인간은 자신도 모르게 감정적으로 흐르게 될 때가 많다. 인간의 감정은 희노애락의 정서이기에 양심과 이성을 떠나면 오류에 빠지기 쉽다. 그러므로 때때로 감정이 이성을 넘을 때가 많아 맹목적이 되고 감정이 폭발할 때는 큰일을 저지를 때도 많다. 그러므로 바르게 보고 바르게 판단하려면 먼저 감정을 조심해야 하고 냉철한 이성과 선한 양심이 주체가 되어야 한다. 역사적으로 위대한 인물이나 정신적 지도자에 대해 평가할 때도 민족이나 집단적 이기주의적인 감정으로 평가 한다면 때때로 오판을 초래하기 쉽다.

 

이상과 같이 진리를 바르게 아는데 장애가 되는 원인을 보면 진리를 탐구하는 일이 대단히 어려운 것같이 보인다. 긴 역사를 두고 선조들이 진리를 각성하는데 피와 땀과 눈물의 노력을 해온 것은 사실이고 지금도 인생도리가 무엇이며 존재 목적이 무엇인지 그 해답을 찾아 방황하고 있는 것을 볼 때에 진리의 탐구가 얼마나 중요하고 어려운 일인가를 알 수 있다.

 

그러나 알고 보면 진리를 아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각 생명체 안에 존재하는 본성과 본질의 자연법으로서 누구든지 상식으로 쉽게 알 수 있다.

 

인간은 육신의 1,동물본심의 자오 능력에 의하여 성장하고 또한 정신적인 성장을 위해 2,양심본심에 의해 선을 알고, 3,이성본심에 의하여 우주만물의 이치를 알고, 4,정서본심에 의하여 미와 예술을 추구하고, 5,심정본심에 의하여 사랑과 자비를 느끼며, 6,종교본심으로 죽음을 극복하여 내세를 알고, 7,영성본심에 의하여 하늘을 경외하고 깨달음을 통해 영생하고자 한다. 이와 같이 누구나 인간 안에 내재한 본심본능으로 자연스럽게 깨달을 수 있다.

 

선악의 판단에 대해서도 특별히 연구하지 않아도 남에게 피해를 주면 악이고 남에게 도움이 되면 선이라고 하는 단순한 만유공리를 본심의 상식으로 알게 되어 있다. 이와 같이 진리는 인간의 본심 안에 내재하는 상식이기에 순수한 마음을 가지면 만인에게 통하는 공리로서 누구든지 쉽게 깨달을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의 이성과 상식을 떠나서 자기중심적이고 편견적이며 왜곡된 관념으로 보면 오히려 더 복잡해지고 진리에 대해 회의적인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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