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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추산은 '공자와 맹자'의 도덕산 "인희선생" 수행

밝은풀 2023. 9. 3. 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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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추산은 '공자와 맹자'의 도덕산 "인희선생" 수행 

공자와 맹자의 도덕산노추산魯鄒山의 노추라는 글자는 노나라와 추나라를 의미하여, 공자와 맹자가 태어난 나라이고 노추산魯鄒山 정상에 세워진 이성대二聖臺의 두 성인은 공자와 맹자를 말한 것이다. 그러니까 노추산은 공맹도덕산孔孟道德山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인희선생은 갑오년(甲午年) 봄에 들어서 4년간 수도를 하면서 여러차례 도술시험도 하고 책을 스무 권이나 썼다그때 먼저 3명이 같이 들어가고, 이어서 여름에 박재락朴在洛이 오고, 이듬해 3명이 오고해서 8명이 되었다.

 

노추산 수도장은 강원도 명주군溟州郡 왕산면旺山面 구절리九切里인데, 묵호에서 수도하고 있을 때 인희선생은 다음 수도할 장소는 노추산이라는 계시를 받았는데 노추산이 어디에 있는지 그 위치를 알 수가 없어서 제자들에게 물었다.

 

옛날에는 광명산光明山이라 불렀고 지금은 노추산이라고 하는 산이 어디 있는지 아느냐?”고 물으니 제자들도 몰랐다그런데 어느날, 인희선생 집에 가끔 찾아오는 강 훈장이 한동안 뜸하다가 오랜만에 와서 하는 얘기가, “그 동안 정선旌善, 강릉, 평창으로 해서 한 두어 달 돌아다니다 왔는데 고단高丹을 가니까 박남현朴南顯이라는 사람이 노추산에다 이성대를 개축해서 낙성식을 하기에 잘 얻어먹고 시詩도 한 수 짓고 왔네.”라고 했다.

 

인희선생은 그래서 노추산 위치를 알았다인희선생은 이듬해 봄에 제자에게 고단에 가서 박남현이란 분을 찾아서 인희선생 얘기를 하고 이성대 방을 좀 빌려주면 제자 몇을 데리고 가서 한 4년간 공부하겠다고 부탁을 드려라. 그러면 빌려줄거다. 그리고 간 김에 노추산에 오를 수 있으면 올라갔다 와라.’하고 보냈다.

 

제자가 갔다와서 박남현이란 분을 만나 선생님 말씀을 드리니까 대 환영을 합디다그런데 아직 눈이 많이 쌓여서 노추산에는 올라가보지 못했노라고 말했다.

 

그래서 사월 열 이튿날 고단에 당도하겠다는 연락을 해 놓고 날짜를 꼽고 있던 어느 날 묵호 지서에 채규인蔡奎仁이라는 사찰 주임이 인희선생 집에 놀러와서 인히선생이 며칠 후 노추산으로 기도하러 가게 되어서 얼마간 만나지 못하겠다고 했더니 대뜸거기는 가지 마세요. 지금 거기는 공비 토벌 작전 중이니 위험합니다.”라고 만류를 했다.

 

인희선생이 나는 죽는 한이 있더라도 꼭 가야하오.” 꼭 가실 테면 지서장이 발행하는 여행증을 만들어 드릴 테니 그걸 가지고 가십시오. 그리고 고단 지서에다 선생님 잘 보호해드리라는 경비 전화를 걸겠습니다.”

 

이제 정해진 날짜가 되어서 여장을 꾸려 메고 여섯 사람이 버스를 타고 여러 시간 지나서 저녁 나절에 고단지서 앞에 내렸다고단 지서에 들어가서 여행증을 제시하니 지서 주임이 경비 전화를 받았노라고 하면서 서로 인사를 나누고 있는데 때맞춰 초등학교 교감선생님이신 박남현이라는 분이 들어와서는 같이 인사하고 인희선생 일행을 자기 집으로 안내해서 일행 모두가 박남현씨 집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다.

 

저녁상을 물리고 앉았는데 박남현씨 둘째 아들 박재락이가 들어와서는 맹랑한 질문을 많이 했다. 저런 젊은이들이 수도를 했으면 좋으련만 속으로 생각하면서 그날은 자고, 이튿날 아침 박남현씨한테 1년간 여섯 사람의 주부식 일체를 주선해서 수도장까지 운반하는 일을 부탁하고 가져간 돈을 다 맡기고 노추산 수도장으로 올라가는데 박재락이가 친구 하나를 데리고 왔다.

 

우리가 길도 안내할 겸 같이 올라가겠습니다.” 함께 길을 떠났는데 산이 험해서 아침에 길을 나선 것이 저녁 늦게야 이성대에 도착했다이성대는 설총薛聰과 율곡栗谷이 수도를 했다고 전해오는 곳으로 본시 초막집으로 있던 것을 박남현씨가 주동이 되어 칠월 칠석 해방된 날을 기념해서 칠칠은 49명의 지방유지를 모집하고 공동 출자로 개축을 했다고 했다.

 

아래층은 마루를 깔고 윗층은 공부방을 만들어, 지붕은 함석으로 이우고 기둥에 칠을 해서 번듯하게 해놓고, 방에는 단을 만들어 공자님, 맹자님, 율곡선생의 위패를 모셔 놓았다.

 

모두들 아래층에서 공부를 하고 인희선생은 윗층에서 글을 쓰는데 인희선생이 노추산 가기 전까지는 도술에 관한 문서만 닦아가지고 여의주, 해인까지 얻어 도술을 자재로 운행하니 천상천하 유아독존 격으로 공자, 석가모니를 라고 부를 정도로 자만심에 가득차 있었다.

 

그런데 노추산에서는 사서삼경四書三經이나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 등과 같은 경전에 속하는 법설法說을 쓰게 되었고, 그런 내용을 쓰다가 가만히 생각해보니 과거에 공자, 석가여래가 모두 나보다 먼저 나왔던 성인들인데 인희선생은 여의주나 해인을 얻었다고 너무 자만 행위를 했구나하고 반성도 됐다. 그래서 인희선생은 차츰 고개가 숙여지기 시작했다.

 

인희선생은 나는 노추산에서부터 사람이 되었어라고 깊은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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