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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 김구' 임시정부 수립 103주년 기념 "학생들이 당신을 기억"

밝은풀 2023. 4. 13.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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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 김구' 임시정부 수립 103주년 기념 "학생들이 당신을 기억합니다"

2023년 3.1절에 일장기를 다는 국민도 있는데 동탄고등학교 운동장에 임시정부 수립 제103주년 기념으로 '백범 김구'를 그린 학생들과 교사는 대한민국 국민들이다.

 

3.1절에 일장기를 단 국민이 있는 2023년에.. 학생들과 운동장에 '백범 김구' 선생이 "내 소원은 대한독립이요"의 외침과 환하게 웃는 모습에 "우리는 당신을 기억합니다" 동탄고등학교 한 교사의 역사의식이 만든 아이들과의 특별한 수업이다. 멋진 현장 교육을 한 것이다. 김구를 정확하게 잘 모르는 학생들도 마음속에 추억으로 남을 수업이다. 

 

2023년 3월에는 특히 애국지사들이 생각나는 한 해이다. 우리의 역사 속에 그분들이 없었다면 오늘날 대한민국이 어떤 모습으로 되었을까? 지난 역사 속에 애국지사들에게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감사해야 한다. 적어도 이 고등학교를 나온 학생은 3.1절에 일장기를 달지는 않을 것이다. 

 

임시정부수립일 기념… 학생들이 만들어 낸 백범 김구의 얼굴 [화성=뉴시스]변근아 기자 ▶ 제103주년 임시정부 수립 기념일(4월 11일)을 앞두고 경기 지역 학생들이 특별한 활동을 진행했다. 7일 화성 동탄고에 따르면 최근 학교 운동장에 백범 김구 선생의 얼굴과 "우리는 당신을 기억합니다"라는 문장이 새겨졌다.

 

김동은 동탄고 교사는 "백범 김구 선생의 뜻을 기리자는 메시지를 한 번 전달해 보자는 취지에서 아이들이 힘을 합쳐 만든 작품"이라며 "이번 활동 외에도 학생들의 사회적 역할과 자신의 책임에 대해 고민해 볼 수 있는 여러 활동을 계획 중"이라고 말했다. 이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수립일을 기념하기 위해 동탄고 3학년 2반 학생 25명이 힘을 모아 그린 작품이다. ■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 되었다. 양반가의 후손으로 태어나 과거에 응시했으나 낙방, 이후 동학농민혁명에 참가했고, 한때 불교 마곡사 승려로 활동했다. 호(號)는 백범(白凡)이다. 호는 미천한 백성을 상징하는 백정의 ‘백(白)’과 보통 사람이라는 범부의 ‘범(凡)’ 자를 따서 지었다. 

 

애국가가 윤치호가 짓고 안창호가 일부 개사했다는 소문은 1920년대 대한민국 임시정부에도 돌고 있어 애국가의 채택을 놓고 임정에서도 논란이 많았다. 이에 김구는 상하이 임시정부 시절 한 동지에게 우리가 3.1 운동을 태극기와 애국가로 했는데 누가 지었는가가 왜 문제인가 라며  작사ㆍ작곡가의 성향보다 애국가 안에 담긴 정신이 더 중요하다.고 반박하였다.

 

1918년 상하이에서 여운영을 당수로 하여 조직된 신한청년당에 참여하였다. 1919년 3.1 운동이 일어나자 3·1 운동 직후 김구는 경의선 열차 편을 타고 압록강을 건넜다. 이어 지금의 단둥에서 이륭양행(怡隆洋行) 소속의 선박을 타고 1919년 4월 중순경 상하이에 도착하였다. 이후 상하이로 망명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참여, 4월 임시의정원 의원으로 참여하였다.

 

9월에는 내무총장 안창호를 찾아가 자신의 소원을 말하며 문지기가 되기를 청하자 안창호는 그에게 경무국장(警務局長)을 천거하였다. 자신의 학식이 낮음을 이유로 경무국장직에 대한 사의를 표하였으나 안창호는 거절하면 젊은 사람들 아래에서 일하기 싫다는 것으로 간주하겠다고 하므로 그는 안창호의 임명을 받아들인다.

 

9월 통합 임시정부가 구성되자 김구는 임정 내무부 경무국장(警務局長)에 취임하여 정보 및 감찰, 경찰 업무를 담당하였고, 일제의 밀정 검거 활동을 하였다. 1920년 국무총리 이동휘로부터 공산주의 혁명에 참가하자는 제안이 들어오자 김구는 제3 국 공산당의 지시를 받는다는 것을 들어 거절하였다. 일본 영사관 경찰은 임정 요인 체포를 위해 경무국장인 그를 사살하려 했다. 일제의 사주를 받은 스파이 선우갑(鮮于甲)·강린우(康麟佑)가 왔으나 자발적으로 그에게 이실직고하자 추방하였다.

 

일본 영사관의 첩자로 독립운동가를 따라 상하이에 나타났던 17세 소년 김도순을 총살하였고, 이후 일본 영사관과 조선총독부의 납치, 암살기도에 시달렸다. 황학선(黃鶴善)은 병원을 차리고 독립운동가들과 친분을 쌓은 뒤 한 번에 독립운동가들을 잡아서 약물로 독살하려 했다. 김구는 황학선을 체포하여 처형했다.■ 위키백과 김구 편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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