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할 수 없는 고통이라면 즐겨라
이 길에서는 자신이 지어서 자신이 이루는 것이지, 타인이 대신해서 이루어 주지 않는다. 참으로 어렵고 힘든 것이 자아완성이요 신아완성인 것이다. 이 길을 가면서 육맥이 창랑하고 백절이 고고하거든 자신이 희망하는 성호를 계속 염송하라. 그러면 고통에서 조금씩 벗어나게 되고, 육신에 힘이 조금씩 붙어 차츰 공부에 진전이 생긴다.
이 길은 고통 그 자체이므로 고통을 피할 수 있는 길은 없다. 때로는 엎어지고, 때로는 한 발자국 나아가지도 돌아서지도 못하고 제자리에 주저앉아 대성통곡할 때도 있다. 그러나 일어서서 가야 한다.
그러한 자신의 모습을 주변 사람이나 일가친척이 보게 되면 미친 사람이라고 비웃으면서 멀어지게 되어 있으니, 아무도 없는 한적한 곳에서 수행하는 것이 자신에게나 주변 사람들에게 좋을 것이다. 부득이 민가에서 수행할 경우에는 문을 걸어 잠그는 수밖에 없다. 그것도 안 될 때에는 눈과 귀를 막고 입을 닫아 버려야 한다. 그러니 이 길을 걸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이겠는가!
그러나 어차피 이 길에 들어섰으면 이루지 않고는 죽을 수 없다는 각오로 정진하라. 육신이라는 옷 한 벌 얻어 입고 이 땅에 와 이 길을 가면서 당하는 고통은 육신만의 고통이 아니다. 형상계 내면에 존재하는 신아神我인 자성체도 울면서 가는 것이다. 그러니 어차피 피할 수 없는 고통이라면 고통을 즐기는 수밖에 다른 길이 없다.
이 길 이 공부에서는 일체의 고통을 고통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고 즐거움으로 승화시켜야 한다. 그래야 고통이 스스로 물러간다. 이 길에서는 고통이 크면 클수록 영광과 보람도 크다. 가기 쉬운 길을 가고 나면 영광이 없지만, 힘든 길을 가고 나면 영광과 보람이 큰 것이다.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럽다 해도 그것은 초로 같은 우리네 인생 백년의 한 찰나이니, 그 찰나에 자신의 본성을 복본해야 한다. 전생의 윤회의 고통에 비하면 찰나에 생사고를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그러니 금생에 이 모든 것을 해결하겠다는 당찬 각오로 수행에 임하라.
법을 법답게 대하는 것이 수행인의 근본이다. 사물을 대할 때나 사람을 대할 때 항상 법으로 대하라. 그렇게 하면 삼법의 눈이 밝아져 나중에는 자연히 법성을 완성할 수 있다. 범부 중생처럼 행동하게 되면 자성은 자라나지 않는 법이다.
‘법성은 본래 그대로다. 자라나서 이루어지는 법성은 없다!’고 망발을 늘어놓을지 모른다. 법아法我인 나는 늘어나지도 않고 줄어들지도 않지만, 육아肉我인 업신業身으로 인해 스스로 자라난다. 씨앗은 땅에서 자라나는 것이다. 종성種性 즉 자성이 자라나는 것이 아니라면 무엇 때문에 종성이라고 하겠는가?
수행인이 어떤 이치나 이론으로써 왈가왈부하면 평생 한 걸음의 진척도 할 수 없게 된다. ‘본래 나는 그대로인데 업신으로 인해 윤회고를 받는다!’는 말이 있는데, 그건 맞는 말 같지만 틀린 말이다. 지금은 후천결실완성시대다. 선천분열성장시대가 아니다. 우주 법계의 선천성 에너지가 후천성 에너지로 바뀌어졌다.
선천성 법성과 후천성 법성은 같지 않다. 선천분열성장시대는 우주의 법계와 신계의 영계가 각각 분열하여 성장하던 시대였으므로 형상계인 이 땅에도 각 민족과 나라가 분립되어 성장했으며, 그에 따라 수호신과 고유 신앙도 각각 달랐다.
그러나 후천결실완성시대에는 창조주 하느님을 정점으로 하여 우주의 법계와 신계와 영계가 하나로 나타나는 때이므로 형상계도 모든 민족과 나라가 하나로 결집되어 가고 있으며, 신앙도 하나로 통합되어 가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일시에 전환되는 것이 아니라, 점차적으로 전환되도록 하늘의 기틀이 마련되어 있다.
“창조주 하느님께서는 이러한 시대를 위해 용황국 십이천 하늘나라를 사해로 분류하여 네 분의 용황님이 다스리도록 명하시고, 지황국 십이천 하늘나라를 오방으로 분류하여 다섯 분의 지황님이 다스리도록 명하셨으며, 인황국 십이천 하늘나라를 삼십육부로 나열하여 한 분 인황님으로 하여금 다스리도록 명하셨다.
이렇게 용황국·지황국·인황국으로 이루어진 십이천 위에서 다시 하늘나라를 사면팔방과 중앙방인 아홉 방향으로 구천을 분류하여 아홉 분의 천황님으로 다스리게 하셨으며, 그 위의 십이천에 창조주 하느님이 계신다.
이렇게 우주의 법계와 신계와 영계가 각분했다가 하나로 결집되어 최종에는 창조주 하느님의 각본대로 후천결실완성시대를 맞이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하늘나라는 이렇듯이 결실 완성시대로 전환되어 수행 가운데 원상이 나타난 지 오래되었으니 오늘날 이 길을 가는 수행인들은 전심전력으로 수행해야 된다. 게으름을 피워서는 아니 된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밀쳐오는 고통쯤은 즐거운 마음으로 승화시켜 내야 한다. 어느 때 어느 시절인들 수행인들에게 고통이 없었겠는가마는 물질만능시대인 오늘날에는 수행인의 고통이 더하다. 그러나 그것을 감내해야만 결실 완성시대의 후천성 법성을 신성화시키고, 신성을 증장시켜 영성을 이룰 수 있다.
이 길을 가는 수행인들이여, 수쳔 년 만에 이 땅 위에 전개되는 후천성 법성으로 자아완성을 이루어 중생들의 무명을 씻어내 주고 함께 천운을 받아 윤회와 생사의 고가 없는 하늘 백성이 될 수 있도록 힘써 정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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